<<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저/역자 : 구해근 지음/신광영 옮김 출판사 : 창작과비평사
여름은 덥다. 20년 전 1987년. 그때도 날은 더웠고, 거리는 6월항쟁의 함성과 뒤따른 노동자 대투쟁으로 더더욱 뜨거웠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20주년을 맞아 이 책을 소개한다.
머리를 기를 수 있게 해 달라!
출퇴근 시간 만이라도 사복을 입게 해 달라!
안전화신고 쪼인트 까지 마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게 해달라!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울산의 현대노동자들이 내건 요구조건의 일부이다.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지만, 20년 전의 경우 임금인상과 민주노조에 대한 요구 이외에 이러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구호 역시 대다수 노동자들의 관심사였다는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만큼 당시 사회분위기는 군대 못지않게 억압적이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장기집권 음모에 맞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전 국민이 떨쳐 일어나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6월 항쟁의 승리’에 따라 일어난 자연발생적이고 비조직적인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7~9월) 당시 3개월 동안 파업건수는 3,341건, 파업 참가자수는 120만 명이었다. 87년 여름의 노사분규-당시는 이렇게들 불렸다-는 1960년부터 1986년 전기간 동안에 발생한 노동쟁의의 총수를 능가했다. 그해 8월 중순에는 하루에 100건 이상의 노동쟁의가 발생했고, 이는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한해 평균 노동쟁의 건수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87년 대투쟁 이후, 한국의 노동계급이 하나의 진정한 계급으로서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한국의 노동운동은 경공업 여성중심의 산발적인 모습에서 대공장 남성노동자 중심으로 조직화된 형태로 전진을 해나갔다”고 지은이는 평가한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에 해당하는 제1장, 1960년대의 산업화에 따른 일반적인 논의는 2~3장,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노동운동을 주로 분석한 제4~제7장, 1990년대 이후 노동계급이 처한 위기적 상황을 서술한 결론인 제8장이다. 이 책에서 주목하고 읽어야 할 부분은 제 4장과 8장이다.
노동운동에서의 성(性 )의 문제
제4장은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이 투쟁의 중심이었던 원풍모방, 동일방직, YH무역 등의 사례와 도시산업선교회 등의 역할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지은이가 흥미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노동운동에서의 성(性 )의 문제이다.
계급적인 차원의 문제로만 해결할수 없는 여성의 문제-여성노조운동가들이 결혼 후에 노동운동을 떠난다는 사실, 가부장적인 성차별, 성폭력...-가 있었음에도, 여성노동자 스스로도 그런 문제들을 “성적인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고,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사람들도 그와 비슷하게 낮은 수준의 페미니즘 의식이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고 사례를 들면서 지은이는 설명하고 있다.
“우리 여성노동자들이 겪은 불공평한 일들은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들은 그런 문제들을 성적인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회고하면 나는 수많은 성차별주의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의식하지 못했다.”
“성에 기초한 차별을 일상적으로 경험함에도 ...성문제를 이차적인 것을 보았다....성문제를 꺼내는 여성은 ...계급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무시당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사회운동노조주의’로 발전하지 못했다
제8장의 제목은 ‘기로에 선 노동계급’으로, 1990년 대 이후의 노동운동의 여러가지 변화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증언하고 있다.
“현중의 조합원들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자가용도 굴리면서,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고, 퇴근 이후 노조집회에 참여하기보다는 자녀의 과외비를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잔업을 하거나 서둘러 가정으로 돌아가는 가족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안락함을 추구하는 듯이 보인다.”
“노동자들은 노조가 자기들이 자존심을 위해 싸워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전투적 지도부를 지지하지만, 강성지도부가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하면 바로 그런 지도부를 버린다. 노동자들은 대단히 실리적이고 이기적이다.”
“지난 10년 동안, 자본은 완벽하게 준비했고,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우리를 상대했지만, 활동가들이 한 것은 자본과 국가를 타도의 대상으로여기는 똑같이 단순한 논리를 가지고 조합원들에게 파고드는 것밖에 없었다”
이러한 증언과 더불어 우리가 눈여겨 읽어야 할 대목은 한국의 노동운동은 ‘사회운동노조주의’, 또는 ‘사회적 조합주의’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지적으로, 이 책 전체를 통해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아래 용어해설 참고)
“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동운동은 1980년대 사회운동노조주의로 발전하여, 현장조직들이 빈민촌 지역단체들과 함께 광범위한 노동계급의 요구를 표명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1987년 이후 노동계급 일반의 광범위한 이해를 드러내고 대변하과 하지 않았고, 도시의 빈민지역운동을 지원하려 하지 않았다. 작업장과 지역조직 간에 연계가 아주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극히 빈약했다. 이것은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이 책이 지은이가 지적한 ‘흥미로운 차이’를 민주노총의 홈페이지의 어느 글에서도 똑같이 인식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1기 지도부는 사회적 조합주의에 대해 강한 지향성을 갖고 있었음에도, 이를 정식화해 민주노총의 이념으로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했고,.... 불행하게도 우리 노동조합운동은 스스로의 이념과 노선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99년 9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당선된 3기 지도부는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 구성을 공약사항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2000년 12월말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가 확정한 최종안은 2001년 1월 대의원대회에 안건으로 제출되지 않고 사장(死藏)되고 말았다.”
용어해설
사회적 조합주의 (Social unionism) : 사회적 조합주의는 조합원들의 직접적 관심사뿐만 아니라, 광범한 사회적, 정치적 쟁점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다. 사회적 조합주의는 변혁을 위한 사회세력화를 목표로 한다. 사회적 조합주의의 목표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이다. 사회적 조합주의의 사회적 영향력은 노동자들의 조직화된 힘, 대중 동원 능력, 사회경제 강령과 정책, 정치적ㆍ사회적 동맹에의 참여에 기초한다. 사회적 조합주의는 노동자 통제와 민주주의 및 운동성의 견지를 약속한다. 사회적 조합주의는 진취적이고 효율적이다. 사회적 조합주의는 정부와 사용자들과 협상하고 복잡다단한 협약을 감시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조합주의는 사회경제적 발전에 크게 기여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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