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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를 아십니까? 이 화초는 봄이 채 오기 전 정원이 연두 빛으로 물들기 전, 열 개의 잎으로 땅을 뚫고 마치 무채색의 켄바스에 라이트 그린 한 점을 찍은 듯 유독 눈길이 가는 그런 화초입니다. 그 잎은 매우 싱싱하고 복스러워 봄 한철을 맘껏 자랑하다가 초여름이 되기 전 감쪽같이 사라진 뒤, 여름 장마 비를 맞으면서 다시 연하고 연한 연분홍 꽃대를 솟구고 가녀린 꽃을 피우지요. 잎이 나 있을 때는 꽃이 없고 잎이 사그라지면 꽃대로 새롭게 피어나기 때문에 꽃은 결코 자기 잎을 볼 수 없고 아무리 그리워도 잎은 꽃을 만날 수 없지요. 이렇게 서로 그리워하고 만날 수 없다고 해서 상사화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도 그와 같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조선이라는 한 공동체였는데 공산주의라는 이념 때문에 이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런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람이라는게 생각이 다 다르기 마련이라서 하느님 나라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극락세계가 마음에 들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공산주의를 좋아할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좋아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다른 나라는 같이 잘도 어울려 사는데 우리는 그깟 이념 때문에 조상이 물려준 이 땅을 두 동강이 내버렸습니다. 참 팔자가 기구하지요. 그리고 이런 사상을 아우르는 것이 화쟁사상和爭思想이고 이를 위해 진력하여도 힘든 판에 오히려 정치판은 이를 악용하여 너는 빨갱이 나는 보수 중도주의하면서 편을 나누고 깃대를 꼽는 그런 어리석은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부부 싸움 끝에 자기 부인을 살해하고 월북하려고 북한대사관에 갔다가 퇴짜를 맞자 대한민국의 인기부와 짜고 천연덕스럽게 눈물까지 흘려가며 부인이 간첩인데 자기를 납치하려 했다고 TV 기자 회견하는 부도덕한 나라, 그것은 먼 태종태세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두환 노태우 시절 핫바지인 장세동이 안기부장으로 있을 적 이야기입니다. 참 좋은 나라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라 남편에게 목졸려 죽은 아내를 남편을 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친 여간첩으로 조작하는 나라가 그대와 내가 사는 대한민국입니다. 버젓이 그 일을 꾸민 자들은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는데 죽은 여간첩은 제처 두더라도 살아 있는 가족의 한은 누가 보상할 것입니까? 그들은 엄청 잘 먹고 잘 살며 기름진 배를 두드리며 골프나 치면서 사는 모양인데 우리 국민은 이 후한무치한 역사의 반역자들을 대자 대비한 부처님 마음으로 이미 용서해 버렸습니다.
이제 세상이 변했으니 과거지사는 묻어두자고, 국민화합을 위해서 그만 정리하자고 마치 성인군자처럼 행세하지 마십시오. 만일 우리가 이 잘못된 역사를 쉽게 망각하거나 지나친다면 마치 누룽지 박박 긁듯 끝까지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 모래배들은 이 땅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언제 어디에서 당신의 목을 조아 올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도 어느 당에서는 같은 당원끼리 너는 빨갱이하면서 이념은 피와 살과 같은 것이라고 몰아 세우며 막가파로 가는 이유는 사상의 편을 갈라서 득을 보겠다는 심산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선거 판만 되면 망령처럼 도지는 지역주의의 물결들, 평소에는 멀쩡하다가도 영남 호남 이야기만 나오면 빈뎅이 속알머리같이 좁아지는 사람들, 아, 아직도 이 땅은 어두운 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논리를 내세워도 그것은 그대와 나의 편견일 뿐입니다. 영남의 실체도, 호남의 실체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오직 정치 모리배의 음흉스런 얼굴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네 머릿속에 각인된 이런 벽을 모두 허물어야 합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좌의 날개도左翼 우의 날개도 右翼 함께 존재할 때 날으는 것입니다. 한쪽으로는 비상할 수 없지요. 마찬가지로 경상도의 날개로도, 전라도의 날개로도 우리는 하늘을 오르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작은 사회적 이데올로기조차 감당하지 못한다면 우리 겨레는 상사화처럼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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