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최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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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지는가?
월드컵의 열풍은 모든 것을 앞서 버렸다. 붉은 색의 금기를, 태극기의 권위를, 남녀노소 세대간의 벽도, 서먹서먹하던 이웃간의 낯설음도, 국내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와 갈등들을 뒤로 한 채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외침으로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월드컵의 열기가 거세질수록, 그 속에 빠져 들어갈수록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내 자신을 보았다. 월드컵으로 미쳐버린 대-한민국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할지, 마음속으로는 축구를 편안하게 즐기며 그 열기와 재미에 푹 빠지고 싶은데 나는 왜 자꾸만 꼬리를 내리는지 월드컵 내내 이러한 생각이 열기와 뒤범벅되었다. 그리고 월드컵 동안 치루어진 6.13 지방선거는 더 많은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선거과정과 결과에서 나타난 씁쓰레한 대한민국을 보면서 월드컵에서 보여준 대-한민국은 같은 나라인지, 6.13지방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생각과 월드컵에서 보여준 국민의 행동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인지, '꿈은 이루어진다'고 한 붉은 악마의 꿈과 억압받고 고통받는 민중들의 꿈과 분단의 상처를 송두리째 떠 안고 살아가는 이산가족들의 꿈과 물 설고 낯선 이국 땅에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의 꿈은 서로 다른 것인지. 월드컵과 6.13의 만남은 내 판단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늦었지만 헝클어진 생각의 끝을 차근차근 찾아보려 한다. 
먼저, 공 하나로 4700만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간 스포츠에 대해 살펴보자.
스포츠라는 단어가 오늘날처럼 많은 이의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스포츠라는 말이 일반화되기 앞서 경기라는 말을 주로 써왔다. 호이징하는 호모루덴스에서 '경기는 놀이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를 창조하는 기능으로 놀이'의 개념을 정리하며 인간을 호모루덴스(Homo Ludens: 노는 인간)라고 규정 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놀이에서 나타나는 대립하는 성격이 경기라는 형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집단사이에서 놀이나 경기가 벌어질 때 생기는 긴장과 결과에 대한 불확실함은 최고도의 경쟁으로 이끈다. 이것이 월드컵에서 우리를 미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월드컵과 놀이로서 경기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집단간의 경기에서는 승리자나 승리의 결과가 집단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집단의 안녕과 노는 것에서 얻어지는 재미를 위한 놀이는 제의와 축제로 발전하고 그리하여 문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은 놀이가 발전한 문화가 아니라 거대한 자본이 큰 흐름을 쥐고 있는 스포츠 산업이다. 자본주의가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축구 역시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자본주의자들은 시장확보(식민지)를 위해 민족과 국가의 개념이 필요했고, 미개한 국가(?)를 개화시킨다는 명분에 그럴싸한 선진문화가 있어야 했다. 서양의술, 종교, 학교(교과과목 가운데 체육이 있음)는 미개한 민족이나 국가를 속이기에 훌륭한 무기이자 수단이었다. 그래서 놀이로서 경기는 평화를 키우는 문화에서 점점 자본의 논리 앞에 상품으로서만, 자본의 필요에 의해서만 그 가치를 평가받게 되었다. 월드컵을 놀이로서 축제로서만 즐길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둘째. 이번 월드컵에서 언론매체들은 4700만 국민이 '하나'가 되었다고 한결같이 목청을 높였다. 단군을 들먹이며 우리가 한민족임 빼놓지 않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하나되었다는 단순논리에 빠져서 민족의 저력을 얘기하며, 곧장 무엇인가 이룰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마냥 좋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나가 된다'는 얘기는 지역감정과 분단의 아픔으로 고통받는 우리 민족에게는 늘 가슴 설레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에 우리가 조건 없이 뜻을 같이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회논의구조가 모든 계층에 열려서 자유로우면서 합리성과 객관성을 뛴 결론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민족이라는 낱말 역시 많은 위험을 안고 있다. 나찌즘이나 파시즘은 잘못된 민족주의의 발달이다. 정치가들은 민족과 애국이라는 감정을 내세워 국민이나 백성을 전쟁터로 내몰거나 이데올로기의 덫을 씌우기도 한다. 이승만의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 는 말이나 \"나를 따르라\"는 나폴레옹의 말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모든 것에 만족되는 '하나'가 아니면 그 '하나'는 모든 것을 구속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군국주의와 전제주의의 싹이 도사리고 있으며, 군사독재 정권의 악령과 비합리적인 조직인 혈연, 지연, 학연이 여전히 큰소리치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참된 하나됨을 위해 이 '하나'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말이다.
셋째. 우리 나라와 독일이 맞붙은 날, 붉은 악마들은 '꿈은★이루어진다'라고 그날의 바램을 응원 구호로 나타냈다. 참 좋은 말이다. 특히 IMF 겪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분단과 이별의 아픔을 가슴으로 삭이며 '통일과 만남' 꿈을 키워가는 사람들이나, 한국 현실의 벽 앞에서 간들거리는 생존의 끈을 잡고 외줄타기를 하는 외국인 노동자며, 그밖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꿈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꿈'이라는 말은 다가올 시간에 대한 바램이고 지금의 절박한 삶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기에 우리는 힘든 현실도 참고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꿈을 꿀 수 있고, 그 꿈을 우리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을까? 혹시, 우리는 꿈 꿀 수 있는 권리마저 도둑맞고, 이 세상이 만든 욕망의 쳇바퀴를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꿈 같지 않은 꿈을 꾸며 그 꿈마저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우리의 현실은 많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트려 바싹 마른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꿈에 매달리게 한다. 꿈은 막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현실이 만들어 질 때 꿈은 비로소 이루어진다. '꿈은★이루어진다'라는 말은 철저한 현실 인식에서부터 출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열광을 낮게 보거나 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볼 수는 없다. 월드컵은 어쨌든 처음에 지적한 재미가 놀이의 대립 경쟁 관계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최고도로 끌어올렸고, 정치나 사회에 실망하고 지친 국민들에게 일탈의 기회를 마음껏 누리게 해주었다. 이웃나라나 선진국으로부터 상처받은 자존심을 딛고 자부심으로 거듭나 희망의 깃발을 한껏 드날리는 계기가 되었다.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은 우리 나라 정치지도자에게 거는 꿈이며, 쉬지 않고 뛰며 자기 맡은 역할을 다하는 선수들은 곧 우리 국민 자신의 모습이었다.
우리의 풍습 가운데 '상여놀이'가 있다. 상여를 메고 갈 때 상두가 상여를 잘 이끌어 망자를 좋은 데로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슬픔에 빠진 상주를 웃게 하여 앞으로 닥칠 현실을 준비하게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월드컵의 성과가 준 기쁨이나 우리 국민이 보여준 열정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당면한 문제 해결 없이 대-한민국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지 우리는 월드컵에서 보여준 우리 모두의 모습에서 우리의 가능성을 믿고 문제를 풀 수 있는 힘을 확인했을 뿐이다. 고달픈 하루살이에 지친 손길을 모아 남모르게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기도가 부디 현실을 제대로 헤쳐 나가 파릇파릇 싹트길 빌며 대-한민국, 짜작 짜작 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