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손 맞잡는 '아시아의 두 친구'
29일 국립극장에서 '한-베트남 평화예술제 2002' 열린다
조호진 기자
tajin@ohmynews.com
세계의 이목이 월드컵 축제가 열리는 한국에 집중되고 있다. 세계인들은 한국 축구의 승리와 국민들의 열광적인 응원에 놀라고 있다. 월드컵이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을 새롭게 조명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월드컵 기간에 한·베트남 평화예술제가 열린다. 이 무대를 통해 평화의 세상을 지향하는 양국 예술인들의 춤과 노래, 연주가 펼쳐진다. 평화예술제는 세계인들에게 월드컵 주최국이자 분단국가인 한국의 마음을 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후원 언론사로 평화예술제에 참여한 <오마이뉴스>는 네 차례에 걸쳐 취재·보도한다. - 편집자 주
아름답게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신과 마주선 곳은 서글픈 아시아의 전쟁터
우리는 가해자로 당신은 피해자로
역사의 그늘에 내일의 꿈을 던지고(1절)
어떤 변명도 어떤 위로의 말로도
당신의 아픈 상처를 씻을 수 없다는 거 알아요
그러나 두 손 모아 진정 바라는 것은
상처의 깊은 골 따라 평화의 강물 흐르길(2절)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어둠 속에서 당신이 흘린 눈물 자욱마다
어둠 속에서 우리가 남긴 부끄런 흔적마다
탄 텃 신 로이 베트남 탄 텃 신 로이 베트남(후렴)
(박치음 작사·곡 '미안해요 베트남' 1·2절
'탄 텃 신 로이'는 한국말로 \"미안해요\"라는 뜻)
제국주의 침략과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됐던 한국과 베트남. 분단과 전쟁이라는 슬픈 역사를 경험한 두 나라는 아시아의 좋은 친구로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서글프게도 두 친구가 만난 곳은 전쟁터였다. 서로의 가엾은 처지를 위로하며 손을 내밀어 붙잡지 못하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다. 한 친구는 가해자로 그리고 천년의 침략에 시달렸던 친구는 피해자가 되어야 했다.
그날의 총성이 멎은 지 27년이 지났다. 폐허의 잿더미에도 꽃은 피어났고 들녘의 벼이삭은 푸르게 출렁거리고 있다. 전쟁은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온 것이다. 평화의 사람들은 전쟁 없는 세상을 간절히 부른다. 씻을 수 없을 것 같던 상처와 증오의 앙금마저 녹이는 평화의 노래로 21세기의 동반자가 되고 싶어한다.
'2002 한국-베트남 평화문화제'가 오는 29일(토) 오후6시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평화의 손 맞잡고'(Hands-in hands for peace)라는 부제를 내건 평화예술제는 전쟁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양국 예술인들의 뜻이 모여 성사됐다. 특히 월드컵 기간에 열리는 이 행사는 한국의 평화의지를 세계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뜻 깊은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평화예술제는 '건강한 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의 산하 단체인 '베트남평화의료연대'를 비롯해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나와 우리'가 공동 주최한다. 이들 단체들은 매년 베트남을 방문해 의료봉사활동을 하거나 평화운동과 역사재조명을 해오면서 양국의 불행했던 과거를 극복하기 위한 디딤돌을 놓고 있다.
이 공연 총 연출은 '미안해요 베트남'의 작사·작곡자인 박치음(순천대) 교수가 맡았다. 또 타악그룹 '푸리'의 리더인 원일(한국종합예술대) 교수가 한국의 음악감독을, 베트남 혁명음악 작곡가인 찐공선의 후계자인 바오푹이 베트남 음악감독을 맡았다.
87년 6월 항쟁 당시 고 이한열 장례식에서 '한풀이 춤'을 추었던 이애주(서울대) 교수는 이번 공연에서 베트남 시인 찜짱의 '수련꽃'을 바탕으로 춤패 '한춤공동체'와 함께 창작춤인 '연꽃춤'을 선보인다.
세계적인 창작 타악그룹 '공명'은 30인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로 이번 예술제를 위해 작곡한 새로운 곡을 연주하고 가수 이지상은 자작곡인 '베트남에서 온 편지'를 들려준다. 이와 함께 '아름나라 어린이합창단'과 베트남의 '어린이합창단'이 평화의 대합창을, 호치민시음악회 타악단이 베트남 타악연주를 한다. 또 베트남 의료활동에 참여했던 치과의사들로 구성된 '베트남평화의료연대 합창단'이 양국의 평화염원이 담긴 '평화의 손 맞잡고'라는 합창곡을 부른다.
이번 공연은 <프롤로그 - 절규> <1장 - 슬픈 만남> <2장 - 참회> <3장 - 내일은 평화> <에필로그 - 평화의 손 맞잡고> 등의 순서로 춤, 노래, 영화, 합창, 연주, 판소리가 총체적으로 엮어진 새로운 양식의 뮤지컬이 시도된다. 특히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담은 베트남 전사출신 영화감독 '반레'의 미공개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된다.
평화예술제 입장권 예매 및 문의는 인터넷-티켓링크(
www.ticketlink.co.kr)나 전화 3675-5808∼10로 문의하면 된다.
\"월드컵 열광이 평화의 열정으로 번지길 바란다\"
<인터뷰>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이한우 대표
베트남 평화의료연대 이한우(50·진주 건강한치과 원장) 대표는 아름다운 짜국강의 노을과 어머님 품처럼 아늑한 쏭바강(베트남 어로 '쏭바강'은 '어머니의 강'이란 뜻)을 그리워한다. 베트남을 연인처럼 사랑하는 그의 연정 밑바탕에는 다시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갈려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반성과 화해가 짙게 깔려 있다.
2001년 평화의료연대 단장으로 베트남 진료활동을 다녀왔던 그는 지난 4월 24일 베트남 중부 푸옌성 투이호아현에 세워진 '한-베 평화공원' 기공식에 참석했다. 양국의 상처를 씻기 위해 첫 삽을 뜬 기공식에 참여했던 그는 전쟁의 참혹한 후유증을 또 다시 목격하고 돌아와야 했다.
호치민시에 위치한 전쟁박물관을 방문한 그는 프랑스와 일본, 그리고 미군의 침략에 의한 잔혹한 흔적을 눈에 담아와야 했다. 특히 고엽제 피해관에 전시된 포르말린 병에 담긴 기형태아들을 보면서 세계 자유의 파수꾼으로 자처한 미국의 추악한 모습을 거듭 확인해야 했다. 미군 고엽제 환자에게는 막대한 보상과 치료를 해주면서도 그들의 전쟁으로 인해 고엽제 피해를 입은 베트남과 한국군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미국의 본질을 본 것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 공연이 적극 추진된 것이다. 그는 양국이 진정한 화해와 우호의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닫혔던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닫힌 것들, 맺힌 것들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예술제가 절실했기에 그는 문화예술제를 제안했고 이 일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다음은 이한우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 한·베트남 평화예술제를 준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3년째 베트남 의료활동을 해오고 있다. 처음에는 마음을 닫았던 그들이 진료단의 헌신적인 의료활동에 감동하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대통령의 공식사과에 반발하는 등 매우 보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을 통해 서로의 맺힌 마음을 풀어야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총구를 겨눴던 양국이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를 때 진정한 역사의 진보가 한 걸음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 이번 공연의 특징과 의미는 무엇인가.
\"화려한 출연진을 일부러 배제했다. 대신 베트남을 사랑하고 평화를 위해 고민해 온 예술인 중심으로 무대를 꾸몄다. 특히 양국 어린이들을 참여시킨 것은 평화시대의 주인공인 어린이를 통해 다시는 전쟁의 참혹함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기업체의 협찬은 거절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일부 기업에서 돕겠다는 뜻을 밝혀왔지만 가령 노동문제로 갈등을 야기시킬 수 있는 기업체로부터 지원을 받아 평화의 무대를 꾸며선 안된다는 입장에서 자원봉사와 후원금과 티켓판매로 강행하고 있다. 어려운 길을 가는 게 운동 아니겠는가. 뭉칫돈보다 작은 정성을 모아 평화의 탑을 쌓는 게 더 중요하다.\"
- 공연준비에 어려움은 없는가.
\"공연예산은 9천만원 가량이다. 애초 평화의료연대와 건치(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회원들 사이에서 한 번의 공연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계속된 논의 끝에 문화예술제의 중요성이 확인되면서 합의가 모아졌다. 그 뒤로는 헌신과 열정이 모아지면서 힘있게 추진되고 있다.
이애주 교수 등 음악인들은 무료로 출연하고, 명필름은 촬영지원을 하고, 무대장치에 참여한 순천지역 미술인들은 재료비만으로 걸개그림을 제작하고 있다. 실질적인 공연비를 따진다면 3억여원이 드는 공연이다. 그리고 건치와 평화의료연대 소속 치과의사들의 티켓판매와 후원금(300-20-153592/윤훈기/제일은행)협조로 평화의 무대가 꾸려지고 있다. 국제민주연대와 나와 우리측도 이 공연을 위해 조직의 열정과 역량을 모두 쏟고 있다. 모두들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든 무대여서 힘이 난다.\"
- 월드컵 기간에 공연이 열리는 데 차질은 없겠는가. 월드컵 열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어 티켓판매 등 관중참여의 어려움이 우려된다.
\"이 공연은 이벤트사가 기획한 예술제가 아니다. 전국에는 베트남평화의료연대 회원인 치과의사들을 비롯해 평화를 갈망하는 양심적인 시민들이 많다. 이 분들은 티켓 판매원이 되어 발로 뛰고 전화를 걸고 있다. 특히 익명의 독지가들이 베트남 노동자 100여명을 초청해달라며 후원금을 기부하는 등 뜻 있는 기금이 모아지고 있다.
지방의 회원들은 역사적인 무대를 관람하기 위해 버스를 대절해 상경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공연일정 또한 월드컵 3·4위 전을 관람할 수 있도록 7시30분에 끝나도록 짜여져 있다. 월드컵 열광이 평화의 시대를 향한 열광으로 번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