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장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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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사단법인 한국제이티에스 이사장


에너지를 지원하지 않아 산에 있는 나무란 나무를 다 베어내면 어떻게 될까요? 온 국토가 민둥산으로 변하겠지요. 당장 먹을 것이 없다고 해서 기계를 다 팔아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백만 원 주고 사와서 고철로 만 원에 내다 팔면 엄청난 재산 손실입니다.

북한을 적으로만 봐서는 안됩니다. 적십자 정신이 어떤 것입니까?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굶어 죽게 되면 먹을 것을 갖다 줘야 하고, 부상을 당했으면 치료를 해 줘야 합니다.그런데 지금은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도 아닌 한 민족입니다.

어차피 앞으로 우리와 같은 직장에 다니거나 옆집에 살거나 사돈될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부모나 형제, 일가친척이 굶어 죽어 가슴에 상처 있는 사람과 함께 산다면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가슴에 못이 박혀 있으니 말 한마디 잘못해도 '내가 북한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하면서 서럽게 우는 사람과 같이 살아서 우리에게 좋을 것이 뭐 있겠어요? 이런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북한 주민이 불쌍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에 쌀을 지원하면서 군량미로 사용될까봐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그런데 북한의 군복무 기간이 얼마인지 아세요? 13년입니다. 남자는 18세에 군대에 가서 31세에 제대합니다. 이때 군인에게 쌀을 주지 말라는 것은 북한에 있는 18세∼31세의 남자는 다 굶어 죽으라는 말입니다. 특이한 것은 북한에서는 여자들도 의무적으로 군대생활을 하는데, 그 기간이 5년입니다. 이때도 군인에게 쌀을 주지 말라는 것은 북한에 있는 20세∼25세의 젊은 여성은 다 굶어 죽으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북한에서는 젊은 사람치고 군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전체적으로 보면 통일이지만, 핵심과제는 아닙니다. 첫째는 민족 살리기입니다. 만약 이대로 방치한다면, 민족 종자를 멸종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민족 살리기를 통해 지난 50년 간 쌓아온 적대 감정을 녹일 수 있습니다. 그 적대 감정을 녹이고 화해하는 속에서 통일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옵니다. 어차피 복구해야 할 농토 미리 복구하고, 어차피 심어야 할 나무 미리 심고, 먹고 살기 위한 공장 미리 짓는 게 낫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통일 비용을 적게 들이는 지름길입니다.

그렇다면 통일을 이루려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통일 이전보다 경제뿐만 아니라 국민 정서도 안정되고 사회도 안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굶주리는 북한동포를 외면하면 통일이 안될 확률도 높고, 통일이 되더라도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겪어야 합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매사에 불평과 불만, 좌절과 분노 속에 살면 우리가 행복할 것 같습니까?

이 시점에서 통일은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심성으로 돌아가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통일은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피를 나눈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데 우선 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통일 아닙니까?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만들고 뭉치게 되는 것 아닙니까? 사람을 살리자는 데 반대하는 법률이나 이데올로기를 타파하는 것이 통일운동입니다. 남북이 함께 살자는데 그것에 반대하고 죽어도 좋다는 것은 개선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한 남자나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그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고, 그 도와 주는 과정에서 사랑이 싹틉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지나면 '아하, 저 사람 없으면 내가 못살겠다. 저 사람 도와 주는 게 내 인생의 행복이다'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같이 살자는 말을 합니다.

통일은 여력이 남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려야 되겠다, 굶주려 죽어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우리의 통일은 이념, 정치권력, 군사력 중심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외형 중심이다 보니 이념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이 수백만 굶어 죽는 데도 어느 한편에 서서 그 정권을 지지하거나 편애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운동이 아닙니다. 시정 잡배보다도 못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의 통일운동은 어느 체제를 지지하고, 어느 편에 서서 노력해 왔느냐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민족적인 재난 앞에 참다운 민족애를 발휘할 때입니다. 동포의 고통에 정말로 가슴아파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고 거기에 반대되는 모든 법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통일운동입니다.

무너뜨리고 죽여 버려야 할 대상과 어떻게 통일을 이야기합니까? 그것은 통일이 아니라 정복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정복군의 정복을 위한 질주를 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북한에 있는 사람들을 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북한의 노동자들이 굶어 죽는 것이 울산에 있는 현대 자동차 노동자들이 굶어 죽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일단 라면이라도 보내고, 어렵다면 옷이라도 보낼 것 아니겠어요.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 민족의 일부라고 보는 것이 바로 통일을 지향하는 마음입니다.

북한동포를 나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으로 본다면, 북한정권이 어떻게 하느냐는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북한 정권이 항복할 때까지 밀어부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북한의 권력자들은 체제유지를 위해 백성의 반이 죽어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정통성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의 이런 태도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반면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해서 함께 살아야 할 동포를 무시하는 태도도 통일의 일꾼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통일의 주체세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지배와 피지배, 정복과 피정복의 관계가 형성되고, 결국 새로운 고통의 세계로 나아갈 뿐입니다.
 
법륜스님
 
정토회 대표 겸 지도법사 ,사단법인 한국불교환경교육원 원장 ,사단법인 한국제이티에스 이사장 ,한국불교사회연구소 이사장 ,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본부 집행위원장. 저서로는 실천적 불교사상(1985년) ,젊은 불자들을 위한 수행론(1988년) ,우물을 떠난 개구리(1990년) ,인간 붇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1990년) ,반야심경 이야기(1991년) 있으며 논문으로는 불교의 세계관에서 본 환경문제(92년 창작과 비평) ,미래문명을 이끌어 갈 새로운 인간상 - 보살 (92년 / 세계불교, 기독교의 대화모임 주최 인간성·사회·환경' 주제의 학술모임 / 미국 보스톤 대학에서의 발표) ,불교와 환경윤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