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금 ‘배추대란’ 중이다. 서민 가슴은 부글부글 끓고 국회는 배추파동으로 시끌시끌하다. 배추값이 포기 당 1만5000원으로 치솟아 ‘금치’가 되면서 물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서민 식탁에서 김치가 사라지고 있다. 학교 급식에서 김치와 깍두기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음식점에서도 배추 김치를 맛보기가 쉽지 않다. 김치찌개 보쌈 묵은지 등 배추를 원료로 하는 음식값을 올리는 곳이 늘고 있다. 추가 반찬엔 돈을 더 받기도 한다. 재래 시장에선 배추 몇 포기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5시간이나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가까스로 배추 3포기를 산 주부들은 로또 당첨이나 한 듯 “배추 심봤다”고 환호하기도 한다. 배추대란 속의 서민 삶의 현장은 이처럼 ‘처절’하기까지 하다.

채소 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식탁에 오르는 대부분의 음식재료들이 작년에 비해 배 이상 폭등했다. 배추 값의 경우 2007년 3월 포기당 1200원에서 2008년 1950원, 2009년 2500원 올 3월 말 4270원을 훌쩍 넘어선 데 이어 9월에는 1만5000원까지 치솟았다.

예견됐던 일, 미리 수급대책 세워놓았어야

채소값이 폭등한 이유는 지난 여름철의 이상기온과 폭염 태풍 등으로 배추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감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추대란을 이상기온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을 호도하려는 핑계에 불과하다.

이상기온이 계속될 때 이미 채소 작황이 좋지 않아 수급에 차질이 오고 가격이 폭등하게 되리라는 것은 예견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정부가 예측기능을 작동하여 매월 관측하면서 미리 수급대책을 세워놓았어야 마땅하다. 누구나 예견됐던 것을 정부만 멀거니 있다가 값이 폭등하고 파동으로 번져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허둥지둥 중국산 수입을 골자로 한 대책을 내놓았다.

그 뒤늦은 대책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수입물량 150톤으로는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양이다. 더욱이 중국산 배추는 과거 기생충알 파동으로 불신이 높아 시장에 풀렸을 때 소비자들이 외면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중국산 배추는 지난 3년간 기생충알 때문에 1600여톤이 폐기처분됐다. 중국산 배추에 대한 기피분위기가 여전히 팽배하다. 먹을 거리의 안정과 식탁의 안전도 관리 못하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이 배추대란을 확신시키고 있는 것이다.

채소파동은 매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되고 있다. 파동이 일어날 때마다 대책을 내놓지만 사태는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올해도 역시 과거에 들어봤던 그 대책이다. 예측가능한 본질적인 처방이 보이지 않는다, 고비만 넘기면 대책은 유야무야 된다. 그래서는 신뢰가 가지 않고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배추파동은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에 대한 불안심리가 여전한데다 가을 배추의 작황 역시 불투명하여 파동이 오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장파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채소값이 전체 물가상승을 부추기게 될 것이라는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다. 가공식품 값과 외식비 상승을 부추겨 체감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에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밀가루 가격 급등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렸던 에그플레이션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서민생활안정 없이는 공정사회도 공허한 구호

그렇지 않아도 물가에 심상치 않은 징후가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 9월 소비자물가는 채소류생산 감소만으로도 3.6% 상승했다. 목표 3%를 훌쩍 넘었다.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이 올랐고 LPG값도 인상되었다. 내년엔 공무원 봉급도 오른다. 이는 임금인상 압력으로 작용하고 물가상승 압력도 커질 전망이다.
유가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도 불안하다. 서부택사스 원유가가 배럴당 81달러를 넘어섰다. 겨울철을 맞아 난방수요가 늘면서 유가 오름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공산품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정부의 물가정책은 안팎으로부터 협공을 받고 있는 꼴이다. 서민물가를 잡겠다며 제시한 MB물가지수도 구호수준에서 겉돌고 있다. 서민가계가 더욱 답답해져 가고 있다. 친서민정책은 물가에 발목이 잡혀 빛이 바래고 있다. 물가안정을 통한 서민생활 안정 없이는 공정사회도 공허한 정략적 구호일 뿐이다.

김진동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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