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키 공사가 비리 부른다” 대형 건설사들의 로비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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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 앞두고 심의위원 상대 집중 로비 -로비 발각돼도 건설사 처벌은 솜방망이
건설업계의 고질병인 불법 로비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공사를 따내기 위해 건설업체들이 입찰 심의위원들을 상대로 거액을 전달하는 등 로비를 했다는 폭로 등이 잇따르고 있어 경찰에서 수사를 하고 있다. 금호건설과 롯데건설, 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들이 입찰로비 및 담합 등과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수차례 제재를 받아왔지만 로비를 끊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뉴스포스트>가 취재했다.
최근 한 교수가 폭로해 논란이 됐던 건설업계의 입찰 비리는 업계에서는 ‘관행 아닌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른바 턴키공사(turn-key)를 둘러싼 담합과 로비다.
턴키공사란 설계에서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을 한 업체가 맡아서 하는 입찰방식을 말한다. 이모 교수의 폭로로 로비가 드러난 파주 교하신도시 공사와 가든파이브 공사 역시 바로 턴키방식 입찰이다.
최근 국토해양부가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발주한 16개 공사를 포함해 24개 공사 역시 연내 턴키 입찰방식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들 공사비만 총 5조3,450억원에 이른다. 당연히 이들 사업에 대해서도 담합과 로비로 얼룩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턴키 입찰은 설계, 시공, 감리의 전 공정을 특정 건설업체가 모두 맡기 때문에 작은 규모의 건설사는 뛰어들기조차 힘들다. 우선 공사 입찰에 필요한 설계도면을 제작하는 비용 등으로 전체 공사비의 3% 가량을 미리 사용하는데 수주를 못하게 되면 건설사는 설계비용을 고스란히 날려야 한다.
따라서 실제로 상위 6개 건설사들이 턴키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 규모가 커질수록 로비 액수도 따라서 커진다”면서 “로비는 턴키방식의 한 과정으로 여겨질 만큼 일상화된 상태”라고 말했다.
경실련의 조사에 따르면 가격 경쟁력이 낙찰의 중요한 잣대인 최저가 낙찰제의 경우 건설사들이 제시한 응찰가의 60% 선에서 낙찰가가 결정되는 반면 턴키방식은 응찰가의 95%선에서 낙찰가가 결정된다고 한다. 30% 가량의 공사비가 부풀려진다는 것.
경실련 관계자는 또 “대형 건설사들은 금액 규모가 큰 턴키 입찰공사를 따낸 다음 하도급업체에게 최저가 입찰을 붙이고 그 하도급 업체가 다시 재하도급 업체에 ‘최저가 입찰’을 붙여 이익을 남기고 있다”면서 “결국 최종 실제 공사비는 평균적으로 최초 낙찰가의 30% 수준이며 나머지 70%는 건설사들 호주머니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뉴스포스트>가 접촉한 건설업계 종사자 역시 “대형 시공사들은 브랜드 네임만 제공하는 명목으로 60~70%를 가져간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턴키방식이 건설 비리를 재생산한다는 문제는 이전부터 지적돼왔다.
턴키방식으로 발주한 청계천 사업, 가든파이브, 지하철 9호선, 지하철 7호선, 은평뉴타운 등에서 모두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청계천 사업은 양윤재 당시 서울시 부시장의 뇌물사건, 지하철 9호선과 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 등에서는 업체간 담합이 드러났다. 가든파이브와 은평뉴타운도 과도한 공사비에 따른 고분양가 문제가 터져나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턴키발주 비율은 2006년 31.7%, 2007년 28.5%에 비해 2008년에 37.4%로 오히려 증가해오고 있는 추세다.
턴키공사의 또 다른 문제점은 건설사들간의 담합이다.
턴키 입찰 시장에서는 대형 건설사들이 단독으로 입찰하면 유찰되기 때문에 다른 건설사를 형식적인 경쟁사로 세우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 7호선 연장공구 들러리 입찰담합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총 6개 공구에 빅6 업체인 대림산업, 현대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GS건설, SK건설이 각각 하나씩의 공구를 수주하기 위해 공구별로 1~2개의 다른 건설사를 들러리로 내세운 입찰 사건이다. 물론 입찰 가격도 사전에 합의했다. 각 공구를 수주한 6개사는 서로 겹치지 않도록 ‘공구분할’까지 합의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이들 12개 업체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그 중 들러리로 입찰에 참가한 6개사에는 총 51억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대형 건설사 6개 업체에 대해서는 221억1,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 2006년 실시한 남강댐상류 하수도시설 확충공사의 경우에는 쌍용건설 등이 각사의 입찰금액을 사전에 98% 이상으로 가격협상을 벌여 합의한 사건이다.
학연·지연 총동원해 인재풀 관리
대형 건설사 로비를 수사 중인 경찰 관계자는 “이들 대기업은 조직이 크다 보니 입찰을 앞두고 심의위원 후보자가 몇 백 명 이상 되는데 이들의 지연이나 학연을 찾은 다음 입찰일이 다가오면 평가심의위원 후보자를 찾아다니며 일일이 자사의 설계에 대한 설명과 홍보를 하며 선물 공세를 벌인다”고 말했다.
롯데건설 로비를 수사 중인 부산경찰청 수사과 수사 2계는 이번 과정에서 입찰 당일에 새벽부터 공사업체 관계자 4, 5백명이 총동원되어 군사작전과 같은 로비가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건설사 관계자들이 평가심의위원 후보자의 집을 지키고 있다가 새벽에 불이 켜지거나 새벽에 큼직한 가방을 가지고 나서는 사람이 심사위원에 선정된 것으로 알고 이들에게 따라붙는다. 보통 심의위원 후보자는 입찰 당일날 발주처로부터 추첨을 통해 위원에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게 되면 이후 이들은 외부와 단절된 곳에서 밤늦게까지 평가를 하게 된다.
이번에 롯데건설의 입찰로비로 불구속 입건된 롯데건설 현장 소장 이모씨 역시 KTX 열차에서 다른 건설사 영업직원들을 제치고 열차 객실 통로에서 은밀히 5,000만원권 수표 2장을 건네며 청탁을 넣는 방법을 쓴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뉴스포스트>와 통화한 롯데건설 관계자는 “현재 법무팀이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이며 회사측의 입장은 정리된 것이 없다”면서 “경찰수사가 진행 중이고 법원 판결이 난 것이 아니므로 좀 더 상황을 지켜봐달라”라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 교하신도시 복합커뮤니센터 공사 입찰에서 참가한 10명의 평가위원 중 한 명이었던 이 교수는 지난 9월 4일 금호건설의 불법로비의 증거로 이 상품권과 당시 상황을 녹음한 음성파일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 녹음자료에 따르면 금호건설 담당자는 “요즘은 전사적으로 영업을 한다. 교수님 덕택에 점수 차가 좀 나가지고 은혜를 갚는 인사 차원에서 준비한 게 있다”며 상품권을 건넸다고. 이 교수는 금호건설의 당시 디자인이 좋아서 높은 점수를 줬을 뿐인데 해당 건설사에서 금품을 건네 황당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포스트> 확인 결과 현재 이 사건은 경기경찰청 2청 수사2계에서 현재 계속적으로 수사 중이며 함께 입찰에 나선 D건설과 H건설에 대한 수사도 함께 진행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뉴스포스트>와 통화한 금호건설 관계자는 “직원이 개인 차원에서 모교에 학교발전기금으로 준 것”이라면서 “해당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영업팀에서 주로 인맥 관리차원에서 하는 일이며 아직 수사를 진행 중인 사안이고 돈을 건넨 시점도 입찰이 끝난 후라 결과가 나와 봐야 적합 여부를 가릴 수 있다”고 해명했다.
공사비 부풀리기로 로비자금 마련
그렇다면 이들 건설사들이 평상시에 관리한다는 약 1,800명에 달하는 인재풀에 대한 로비 자금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건설사 영업 직원들은 평소에도 이들 인재풀에 대해 호화로운 식사 대접에서부터 가족 생일잔치 비용을 대주거나 해외 세미나 경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또 수천만 원에서 억대에 이르는 연구·개발 프로젝트 용역을 맡기기도 하는데 이는 누가 심의위원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건설사들은 ‘공사비 부풀리기’를 통해 입찰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턴키입찰 방식은 입찰에 뛰어든 건설사가 적고 가격 경쟁력보다는 설계에 보다 높은 점수가 주어지다 보니 입찰에 응시한 업체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실제 공사비에 비해 높은 응찰가를 써내는 담합도 벌어진다. 최근 삼성물산 역시 동천 래미안의 고분양가 책정 과정에서 로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동천래미안’은 평당 분양가 1,726만원을 책정하며 공급됐는데 인근 지역 아파트들보다 높은 가격에 책정됐다는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검찰이 수사를 한 결과 분양가 승인 로비명목으로 시행업자로부터 40억원을 받은 혐의로 이모, 송모씨 등 용인시 체육단체장 2명을 구속 기소하고 24억원을 받은 혐의로 임두성 의원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또 철거업자로부터 7,000만원을 받은 동천구역 도시개발조합장 최모씨를 구속 기소하는 등 이 사건과 관련해 모두 11명을 알선수재 또는 배임수재 뇌물수수, 횡령 등 혐의로 입건했다.
이와 관련 <뉴스포스트>와 통화한 삼성물산 관계자는 “이같은 문제는 시행사가 모든 것을 관할하고 있으며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현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내부적으로 확인해 봤지만 현금을 뿌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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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법 강화해 처벌 수위 높여야”
로비가 발각되더라도 심사위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펼친 직원을 처벌하는 정도에 그칠 뿐 건설사들은 전혀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들 영업 직원들이 회사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면 건설사를 처벌하기 힘들다는 것.
돈을 받은 심의위원에게도 불구속 기소나 벌금형 등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이다. 민간 심의위원은 발주처 이해 관계자가 아닌 것으로 해석돼 건설산업 기본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배임수재 혐의로만 처벌받는다.
지난 2006년 가든파이브 입찰 심의와 관련된 검찰 수사에서도 검찰이 건설업체 직원, 서울시 공무원, 공기업체 직원, 대학교수 등 28명에 대한 로비정황을 수사하고 기소했지만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입찰 평가위원이 발주자나 이해 관계인에 해당하지 않아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결 내용이었다.
당시 가든파이브 전문상가단지 입찰 공사는 현대산업개발, GS건설, 대림산업, 대우건설, 포스코건설, 삼성물산 등이 입찰에 참여한 1조원대 규모의 공사로 현대, GS, 대림 3곳이 최종 시공사로 선정됐다.
따라서 건설사들의 로비행태를 단속하기에는 법이 미비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국토해양부가 법인이 뇌물공여에 개입했다는 입증이 될 경우 강력하게 처벌하고 턴키 심사위원에게 뇌물을 공여한 경우에도 처벌하는 것 등을 골자로 관련 법령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최근 3년 내 2차례 뇌물공여한 사실이 입증된 경우에는 해당 법인의 등록을 말소하고 입찰 담합으로 3년 내 2차례 과징금 처분을 받은 경우도 등록을 말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실련 등 민간단체들은 이같은 법령 개정만으로는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온 로비 비리를 근절하기 힘들므로 “턴키제도를 폐지하고 2008년 유보시킨 최저가 낙찰제를 전면 확대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희>
2009년09월25일 00:29:40초
김희정의 전체기사 (김희정 기자
penmoim@hanmail.net)
